[후기] [인사이트 칼럼] 게임은 사람을 진화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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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도 대한민국 게임대상의 우수상에 '블레스'와 '트리 오브 세이비어'가 선정되었다. 필자는 모바일 게임에 큰 흥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은 'HIT'와 '스톤에이지 모바일'의 수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블레스'와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올 상반기에 상당한 시간을 즐겼던 게임으로 선정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게임강국이라 말하면서도 대한민국은 정말 게임이 없다

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서 게임-술-도박-마약 통합 관리법이 제창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당시 게임이 나쁘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머지 3개에 비해서는 건전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담배가 게임보다 건전하다는 점에 놀란 사람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그때부터 게임이 마약과 같은 수준의 관리가 필요할 정도로 부정적인 존재가 되었다. 물론, 명확한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다는 의견도,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모두 아직은 팽팽하다. 게임을 하는 것이 과연 사회 문제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며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설만이 존재한다. 높으신 분들은 모르는 것이 게임이라 그런 것인지, 단순히 돈은 잘 벌지만 부모님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매체라서 그런 것인지 어찌되건 대한민국의 게임은 나쁜 것이다. 그리고 게임이 나쁜 이유의 기저에는 우리 아버지가 하던 말씀이 있을지도 모른다.


" 그거 시험에 나오냐?"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인생은 수능을 치기 위해 살아간다. 좋은 문학은 수능에 나오는 문학이며 좋은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 공부란 수능에 나오는 것을 많이 아는 사람이다. 좀 더 넓혀도 좋은 대학에 우수한 결과로 입학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것만이 공부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은 시험에도 나오지 않고 수능 수시입학 전형 어디에도 프로게이머 우수 전형은 없다. 온라인 게임은 상업적으로 굉장히 성공하고 있는 것 같고 사회적 영향력이 강력한 것 같지만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보아도 내실이 없음은 확실히 알 수 있고, 기성 사회가 좋아하는 대학에는 아직 게임학과가 없다. 그리고 그런 게임학과도 아이온 서버 랭킹 가산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은 나쁘다.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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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과연 게임은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 외에는 인간에게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누구도 게임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고찰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게임이 사회를 진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걸까. 왜 모두들 게임을 보기만 할 뿐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 사회가 너무 바쁘고, 생각을 하는 것은 이력서에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형의 가치는 중요하지만 가산점으로 환산되지 않는 지표는 무의미하게 인식하는 사회에서 생각은 오로지 소수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바쁜 모두를 대신해 게임을 생각해보려 한다.
  중독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중독을 유발시키는 대표적인 산업들을 총괄하여 강력하게 통제하자는 것이 통합관리법의 주요 골자이다. 문제는 게임 중독이라는 단어를 입증할 어떠한 확실한 의학적 근거가 아직은 미비하다는 것이다. 게임 중독은 의학적 근거보다는 사회적 인식의 문제로 치환된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앞서 말한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로 대표된다.
  하지만 게임을 통한 긍정적인 가치 기준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사회적 인식은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게임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인식의 재고란 단순히 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단순한 해결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게임이라 지칭할 수 있는 기준에 ‘사회를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는 뜻이다.
  게임 중독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게임이 가지는 몰입감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고 있던, 소위 말하는 ‘끝’이 존재하는 Package Game들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담고 있으며 이것은 몰입이 심할수록 빠르게 결말로 다가섰다. 즉 몰입의 강도와 체험 시간은 반비례하며 이것으로 플레이 타임을 조절하여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절한 수준의 몰입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주류인 온라인을 통한 MMORPG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이머가 설사 게임을 그만두었다 하더라도 게임은 계속되고 있으며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게임을 제공하는 측은 언제 게이머가 그만둘지 모르며 그만두지 않는 이상 재미를 제공해야 하고, 그만두지 못하게 몰입을 유지시켜야 한다. 그러나 게임의 재미와 몰입 강도에 대한 역치가 점점 높아지면서 게임을 감각적 자극에 치중하게 만들고 이것은 게임의 질적 하락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끝없이 이어지는 게임에 끝없이 몰입한다. 누군가는 이 과정에서 지쳐 포기하지만 누군가는 ‘중독’이라 지칭해야 할 정도로 집착할지도 모른다.
  게임 중독이란 이 몰입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몰입을 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중독은 몰입에서 생기지만 몰입은 게임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대한민국 게임정책은 아직도 플레이 시간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에 머물고 있다. 10시가 넘어서 청소년은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내세운다는 정의는 청소년의 수면권이다. 차라리 사교육과 야간자율학습도 함께 제한해주면 모르겠다.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는 권리를 위한 제한이 아니라 잠들지 않고 게임을 하는 것이 싫다는 1차원적인 투정이다.
  하지만 게임도 노력해야 한다. 게임과 몰입은 떼어놓을 수 없고, 몰입은 필연적으로 중독이라는 위험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게임 내에서의 몰입이 인간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게임에 대한 몰입은 혈액 순환을 돕는 적당한 음주, 고통을 덜기 위한 진통제로의 마약처럼 부작용과 함께 그 존재 가치에 대한 정당성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며 게임에 대한 과학적 · 의학적 근거 없이 단순한 사회적 시선으로 행해지는 비난에서 다소나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게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관념과 의견을 수용하며 그것에 합의하고 행한다. 왜 몬스터를 죽여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게이머는 드물며, 이러한 무비판적인 폭력 행위의 수용 형태는 사실 굉장히 위험하다. 사람은 자신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행동에 의해 사고방식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게임 속에서 몬스터를 죽인다고 하여도 나가서 동물을 직접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게임 속에 내재된 배금주의는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파고들어 사고방식을 바꾸게 된다. 모든 가치가 경험치와 아이템, 돈으로 환산되며 최종적으로 모두 돈이라는 가치로 재환산되는 과정을 거친다. 몬스터를 죽이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며, 돈을 버는 이유는 더 강한 몬스터를 잡기 위함이다. 그런데 더 강한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이유는 그 몬스터가 더 많은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즉흥적이고 배금주의적인 세계관에서 몇 년이고 몰입을 하는 것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문제점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게이머들은 이 세계관에 긍정하거나 깊은 공감을 하기에 수용·합의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제공자가 제공하는 대로 무비판적 수용을 할 뿐이다. 그렇기에 만약 게임을 제공하는 사람이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제공한다면 그것 또한 게이머들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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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협동’이다. 최근에 출시되는 게임일수록 대규모 유저들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강화하고 부각시키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커뮤니티성은 매우 중요한 화두이며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계와 우리 모두를 위해’ 협동한다. 사람들은 게임 속에서라면 현실에서 불가능한 ‘대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좋은 게임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 사회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무조건적인 베품’과 ‘이익을 초월한 협동’,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나서는 용기’ 같은 여러 가지 덕목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게임의 유해성을 지적하며 나온 가장 치명적인 사회적 논리는 ‘살인하는 게임을 하다보면 살인을 하게 된다.’라는 근거 없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 사회적 시선을 오히려 이용하여 ‘타인과의 협동, 대가없는 베품, 정의를 위한 희생을 반복하는 게임’을 지향할 수 있다면 게임을 공격하던 가장 강한 무기는 오히려 게임을 지켜주는 가장 튼튼한 갑옷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매우 길다. 필자가 가장 오랫동안 해본 패키지 게임의 연한은 5년에 불과하지만, 지금 현재 즐기는 온라인 게임 중 10년 가까이 한 게임도 있으며, 5년 넘게 한 게임들은 상당히 많다. 그리고 필자는 아마 내년에도 계속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의 플레이 연한은 이처럼 매우 길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층의 대부분은 반드시 게임을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게임에서 좋은 행동으로 인정받고 이익이 생기는 행동이 ‘베품’, ‘협동’, ‘희생’, ‘용기’ 같은 것이라면 분명 게임은 사회를 윤택하고 즐겁게 만드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몬스터를 죽였을 때 이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도왔을 때 더 큰 이익이 생긴다면, 아이템이 좋을 때 칭송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노력했을 때 칭송을 받는다면, 타인을 죽이는 것보다 동료와 협조를 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오게 한다면 우리는 게임 속에서 반드시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1~2년 동안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게임을 접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게임을 하게 될 것이다. 게임은 우리와 평생을 같이하는 하나의 중요한 놀이로서 존재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1이 나온 것은 1998년도이다. 그 때 이 게임을 접한 중학생은 벌써 서른을 넘었다. 아마 지금도 그들은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게임은 전 연령에 걸쳐 향유될 것이며 이것은 게임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을 15년 넘게 즐기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즐길 것이다. 필자의 조카가 필자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는 20년도 넘게 게임을 즐겼을 것이다. 조카가 필자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분명 게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의식이 수용한 반복된 가치는 분명히 현실에서도 반영이 될 것이다.
  


  현실의 우리는 파편화되어 간다. 이익을 초월하고 지식으로 잘 알고 있는 인간 본연의 좋은 가치를 실천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20여 년 간 협동하고 희생하며 정의를 부르짖었다면, 게임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좀 더 사회적인 생각과 행동을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이제 인문을 끌어안아야 한다. 좋은 게임이란 사회의 진화에 도움이 되는 가치가 인정받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게임일 것이고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도와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게임일 것이다. 말은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행동은 사고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온라인 게임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추구해야 한다. 좋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게임은 결코 사회를 퇴보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를 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좋은 가치’들은 게임의 시스템과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게임의 가치는 상업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 속에 인간과 사회를 위한 ‘좋은 가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많이 팔린 게임일 뿐, 좋은 게임이 아니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앞으로 나올 게임들과 현재 나온 게임들이 좋은 게임이 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분명히 게임은 인간과 사회에 매우 필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간과 사회를 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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